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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MG

태동지라는 자부심으로
전통을 이어가는 새마을금고의 종갓집

경남 산청새마을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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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명이 조금 넘는 인구의 작은 마을 산청군에서 산청새마을금고는 오랜 역사를 기반으로 지역민의 신뢰를 받으며 성장해온 곳이다. 새마을금고의 태동지라는 자부심을 안고, 꾸준히 자산을 늘려오면서 성장을 거듭해온 산청새마을금고를 방문해 보았다.

사진 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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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인심 좋게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치유의 고을
한자어로 뫼 ‘산(山)’ 맑을 ‘청(淸)’을 쓸 정도로 아름다운 산새와 풍경을 가진 산청은 전국 군청 중 두 번째로 작은 군에 속할 정도로 그 규모가 작다.
“소백산맥과 그 지맥에 둘러싸인 산간분지이면서 경호강이 세로로 흐르는 산청군은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은 곳으로 이름난 곳입니다. 과거에는 쉽게 오가기 힘든 오지 중의 오지로 꼽혔지만 남북을 관통하는 통영대전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접근성이 매우 높아졌지요. 무엇보다 산청군은 조상 대대로 터전을 잡고 사셨던 분들이 많아 공동체 의식이 강한 지역이에요. 다들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며 인심 좋게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
1997년 산청새마을금고 이사를 시작으로 2012년부터 현재까지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유수생 이사장의 설명이다. 유 이사장의 지역 자랑은 쉼 없이 이어진다. 산청군은 자랑할 만한 관광지와 유적지가 많은 것 또한 주민들의 자부심이다. 예로부터 울창한 숲과 세가 좋은 산들이 많아 약초의 고장이라 불리었으며 실제로 몸에 좋은 자연 약초를 많이 먹고 살아서 장수마을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산청군의 왕산과 필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동의보감촌이 전국 최초로 한방을 테마로 한 건강체험 관광지로 유명세를 탄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이유다.
“산청군이 치유의 고장이라 불리는 이유는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힐링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청군에 암환자가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공기 좋고 물 좋은 이곳에서 병을 치료하러 요양 오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이번 기회에 산청에 암 환자가 많이 발생한다는 오해나 의문은 꼭 바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유수생 이사장이 다시 한 번 힘주어 이야기한다.

오직 진정성과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온 산청새마을금고
그러나 정 많고 아름다운 산청군과는 별개로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산청군에서 산청새마을금고는 늘 만만치 않은 시험대에 올라야 했다.
“특히 인구감소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1972년 12만3천 명 정도 됐던 인구는 현재 1/4토막이 난 상황이고, 땅이라는 한정된 자산을 이용해야 하는 농촌에서 주민들이 수익을 올리는 건 결코 쉽지 않았거든요. 주민의 수익과 금고의 재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저희 역시 힘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산청새마을금고의 ‘차별화 전략’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고령인구가 많은 환경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나이가 많아지면 수입이 줄어들고 돈에 관한 의심과 불안이 늘어나면서 젊었을 때부터 거래를 해온 기존 금융기관에 대한 충성도가 말도 못하게 강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은 딱 하나에요. ‘이 돈이 잘못되면 큰일 난다’라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그분들의 거래처를 바꾸는 게 그래서 너무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결국 저희 금고 직원들의 일은 하나였습니다. 그분들께 신뢰를 얻는 거였어요.”
금고 직원들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어르신들 생일을 기억하는 건 당연했고 집안의 제삿날까지 기억했다가 계란 한 판이나 탁주라도 한 병 사들고 가서 인사를 챙겼다. 자식들조차 종종 잊는 제삿날까지 챙기는 금고 직원들의 한결 같은 정성을 보면서 결국 어르신들은 마음을 바꾸고 새마을금고와 직원들을 자식처럼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같은 변화는 산청새마을금고의 성장에 탄탄한 초석이 되어 주었다.
“직원들에게 2번의 전화보다 한 번의 만남이 더 소중하다”고 늘 강조한다는 유 이사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인 ‘신뢰’라는 말로 금고의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새마을금고의 태동지, 새마을금고역사관에 방문해주세요
지역을 위한 사회공헌활동은 산청새마을금고에서는 특히 중요한 일이었다. 산청이 새마을금고의 태동지인 만큼 더불어 사는 삶, 상생의 정신을 정석대로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시장과 자매결연을 맺어 상인들을 지원했고 노인요양원, 장애인시설에도 꾸준히 식사를 대접했다. 제일 중요한 건 인재를 키우는 교육이라는 생각에 산청군 향토장학회에 장학금을 기탁해왔고 지난해에는 산청읍 내수경제 살리기 ‘MG지역상생 프로젝트’도 실시했다. ‘MG새마을금고 지역상생의 날’을 기념해 경로당에 발마사지기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 같은 끝없는 고민과 도전, 실천 덕분일까? 산청새마을금고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9년 374억 원이었던 자산은 2022년 6월 현재 609억 원으로 늘어났고, 2016년·2017년 생명공제 달성률 부문 최우수상, 2018년 손해공제 달성률 부문 최우수상, 2020년·2022년 새마을금고 경영평가대회 경영우수상 등 숱한 수상 기록을 세웠다. 유수생 이사장은 새마을금고의 오랜 숙원사업인 ‘MG새마을금고 역사관’ 건립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장관상을 받았으며, 5월에는 그간 금고와 중앙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새마을금고 대상을 받기도 했다. 2016년에는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대통령표창도 수상했다.
산청군은 전국 새마을금고의 원류가 되는 곳이다. 새마을금고의 정신과 실체가 처음 그 싹을 틔운 데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1963년 5월 25일 산청군 생초면 계남리 하둔마을에서 ‘하둔마을금고’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새마을금고가 지금의 종합금융협동조합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을 담아낸 MG새마을금고역사관의 정체성은 산청새마을금고가 그간 치열하게 성장하면서 이어온 금고의 역사와 정신의 주요 근간이 되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열정과 상생, 마을금고 정신만큼은 결코 작지 않은 산청새마을금고! 이곳은 어쩌면 우리가 지켜야 할 금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이 아닐까.

mini interview
“새마을금고의 역사는 곧 새마을금고의 미래입니다”

먼저 새마을금고역사관이 탄생할 수 있도록 큰 결정을 해주신 박차훈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박차훈 회장님께서 새마을금고의 미래를 위한 중점사업의 하나로 새마을금고역사관의 건립을 추진하신 것을 시작으로, 2018년 9월 7일 산청군수와의 역사관 건립에 대한 면담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예정부지에 대한 현장답사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부지선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허가되는 지역, 안 되는 지역이 있었고 농림지역은 땅을 매매할 수 없었습니다. 괜찮은 땅이 있어서 쫓아갔다가 무산되는 일도 부지기수였고 말을 바꾸는 땅주인들과의 계약 과정 역시 고생스러웠지요. 그 과정에서 생초면 주민들은 생초가 출발지인데 왜 여기에다가 짓지 않느냐고 항의도 많이 했고 이를 위해서 가진 대화와 설득의 시간도 참 길었습니다.
그렇게 총 16개 부지에 대하여 현장답사와 적합성 여부를 검토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산청읍 지리 590에 위치한 KBS중계소 부지로 최종 확정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매입계약, 소유권 이전 계약, 건축허가, 건축물 사용승인, 역사관 기공, 전시공간 조성, 시범운영을 거쳐 새마을금고역사관의 역사적인 개관을 맞이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새마을금고역사관이 산청에 건립됐다는 사실, 시작부터 끝까지 제가 참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영광이자 보람이었어요. 개관식을 하던 날, 마음이 찡하고 감격스러워서 눈물을 애써 삼켰던 기억이 납니다. 새마을금고역사관은 금고를 널리 알리는 곳입니다. 금고정신의 산교육장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체험과 편안한 휴식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역사관 건물의 방향이 각각 다른 것에 대한 의미와 다양한 나무가 심어진 숨은 뜻 등 역사관 건립에 있어서의 재미난 이야기도 많습니다. 이곳에 많은 분들이 찾아와 새마을금고의 정신과 역사를 돌아보고 더 큰 미래를 함께 꿈꾸기를 소망합니다.